참가후기

[참가후기] 김창재 Conwell Egan Catholic HS 2018년 졸업, Massachusetts College Of Pharm…

작성자 KEF
작성일 18-07-17 17:29 | 조회 25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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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국제학생에서 미국학교의 부학생 회장 William Kim 이 되기까지


김창재 Conwell Egan Catholic HS 2018년 졸업,  

Massachusetts College Of Pharmacy & Health Sciences-Pharm D 6 year Program (with scholarship $65,000 per year)

 

 

     지금도 미국 사립 고등학교에서 부학생회장을 하고 또한 내 힘으로 졸업하고 미국 약대에 65,000불의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이전에 나는 미국유학을 갈 것이라고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유학을 가게 된 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닌 우리 어머니의 바람과 또한, 나도 엄마의 바람에 반감을 가지지 않아서이다.

그렇게 허둥지둥 준비하게 되어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미국 Pennsylvania 주의 Fairless Hills에 있는 Conwell-Egan Catholic High School을 미국 나셀오픈도어 재단을 통해서 가게되었다.

                   

      2014 년도 8월에 미국에 갈 당시 모든 것이 나에게는 꿈만 같았다. 불과  같은 해 7월만해도 한국에서 친구들이랑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거나 PC방에서 축구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내 눈 앞에는 나의 14년 인생 한번도 볼까말까 한, 말 그대로 외국인 친구들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학하는 매일매일이 정신이 없었다미국유학을 급하게 준비한 터라 나에게 미국 고등학교에 대한 정보나 교육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첫 학기는 정말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나의 성적은 그렇게 좋지 못했고 미국친구들과의 관계는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일단 나는 남은 시간을 외국인 친구들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어느 한 기사에서 그 나라의 말을 빨리 익히고 수월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현지 친구들을 만들거나 현지인 여자친구를 만드는 것 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가 여자친구를 사귀는건 어렵다는 걸 아주 잘 알았기에  미친 듯이 친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학기말에는 한 80퍼센트 정도 친구들이 하는 말과 선생님이 말하시는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에 따라 나는 어느 정도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했으며 몇몇 친구들과의 관계는 정말로 돈독해졌으며 나의 성적도 수직상승을 해서 몇몇 선생님들은 나를 칭찬을 해주셨다. 나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으며 점점 이 학교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첫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는 미국 고등학교에서의 성적관리와 대학진학 준비에 관련된 자료들을 찾고 읽기 시작했다. 많은 자료들을 읽어보고 찾아본 결과 성적관리도 중요하지만 학교 외부활동도 정말로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자료에 따라 나는 첫 여름방학이 끝나고 10학년으로 돌아가자마자 바로 축구부에 가입하였다. 이것은 나에게 더 많은 친구들과 사귀고 나중에 내가 Student Council Executive Board(학교 학생회) 2년 연속으로 당선될 수 있게 도와준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축구부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정말로 다양한 학년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축구부 부원들과 같은 수업을 듣는 경우도 잇었기 때문에 더 돈독해지고 가끔씩은 주말에 만나 축구도 같이 하고는 했다. 나는 정말로 자연스럽게 미국친구들과 Conwell-Egan Catholic High School 의 일원이 되었다.  

 

     성적은 아주 좋게 유지가 되었으며 나랑 정말 친해진 선생님들도 몇몇 생기게 되었다. 이것은 나중에 미국대학 진학준비 할 때 선생님 추천서를 받을 때 정말로 많은 도움이 되게 된다. 그리고 학기말이 되었다.   나의 미국 고등학교에서 나의 인생, 성격, 그리고 존재감을 크게 바꾼 하나의 엄청난 제안이 나의 9학년 영어선생님 Ms. Gallagher 한테 받게 된다. 바로 학생회 선거 출마였다. 우리학교는 국제학생이 좀 있었다. 그것에 따라 내가 11학년이 되는때 Student Council Executive Board 에 새로운 보직인 International Representative(국제학생대표)를 만들게 된 것이다리더십 경험과 나의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될것 같아  나의 9학년떄 영어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아주 속전속결로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연설문을 적어보고 학교 강당 단상위에 올라가 전체 학생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다. 정말로 짜릿하고 긴장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운좋게 당선되어서 내가 미국에서 보낸 4년의 기간 중 다섯손가락에 드는 기억중 하나이다.

   

       학교에서의 활동과 미국 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있었다. 그에따라 나는 조금더 나의 학교성적에 더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유학을 온 첫해,  9학년의  조금 안좋은 성적을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Honors 수업과 대학과정수업을 선택하였다. 또한 내가 듣는 수업에 더 집중하고 높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4년간의 미국 고등학교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11학년때와 12학년 1학기를 말할 것이다.

일단 나의 11학년은, 학교에서 거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학년에 축구와 미식축구 그리고 학생회 활동을 병행한 탓에  아주 바쁜하루를 지내면서 살았다. 그리고 11년에는 학교 수업 수준이 어느정도 높아져  학교에서 학생회 일이나 운동부 훈련을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쉬지도 못하고 바로 과제나 시험공부를 했어야 했다. 정말 힘들고 피곤했지만 하기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정말 나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영어 문법과 작문이 약했는데 11학년 영어선생님 Ms. Nolan을 만나고 아주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로 빡세고 힘들었다. 나는 거의 일주일에 1개에서 2개의 에세이를 써야됐었고 문법관련 숙제를 매주 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씩 이 선생님 수업이 힘들어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내가 해왔던 것들을 되돌아보면 정말로 가치있고 나에게 정말로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11학년 때 했던 나의 학생회 활동은 정말로 힘들고 나의 개인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만 정말로 재밌고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우리 학교의 거의 모든 행사와 예산를 8명의 학생회 임원들과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짜내며 예산 지출을 계획하는 일을 하였다. 이것은 정말로 나에게 가치있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런 것들을 나는 처음 해보았기에 학기초반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하나인 학생회장 Dominic Lanza랑 학교에 남아서 같이 얘기도 하고 학생회 일정을 마무리하며 아주 빠르게 적응할수 있었다. 나의 11학년이 점점 마무리가 되어갈 때 나에게 큰 결정을 하게된 사건을 맞이한다.  바로 학교 부학생회장 출마를 하게 된것이다. 국제학생대표 경쟁자는 다른 국제 학생이었기 때문에 준비 하는것이나 홍보를 하고 전체학생들에게 각인 하는데에 시간을 많이 쏟아 붓지는  않았던것 같다. 하지만 이번의 부학생회장 선거는 뭔가 다른 수준의 긴장감과 무거움이 있었다. 다른 부학생회장 출마자는 학교에서 인기도 많고 치어리더 캡틴에 다른 외부활동도 열심히 하는 엘리트 학생이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제대로 준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설문 준비와 선거운동을 철저하게 해왔던것 같다. 그 결과 나는 그 출마자를 아주 큰 표차로 이길수 있었고 2년 연속 학생회 임원이 될수 있는 영광을 얻을수 있었다.

 

     11학년을 아주 성공적으로 마치고 여름방학에 한국으로 돌아오니, 내가 해야될 일들은 아주 산더미 처럼 쌓여있었다. 바로 토플과 SAT 준비였다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학원을 등록하고 거의 학원에 살다시피 공부를 했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월요일 부터 토요일까지 10시간씩  하루도 뻐짐없이 토플과 SAT에 매진을 했고 8월말 내가 미국을 돌아가기 전 내가 입학하고 싶은 약대의 토플요구 조건 점수를 맟추고 미국에 갔다. 하지만 이것이 준비의 끝이 아니었다더 많은 Honors수업과 SAT 그리고 다른 학교 외부 활동들을 해야했기 때분에 아주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학생회 일은 내가 11학년때 했던것 보다 더 많은 일과 중책을 맡아야 했다. 나는 이제 직접 학생회장이랑 긴 얘기를 통해 1년 예산을 직접 나누어야 했고 우리 학교의 외부활동도 직접 참석과 준비를 했어야했다. 이때 정말로 느낀건 바로 아주 무거운 책임감과 협동심이었다.

11학년떄 머리를 싸매며 해왔던 학생회 경험들이 아주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12학년 학기초 정말로 철저하게 대학진학 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12월까지 SAT를 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고 대학 입학사정관한테 잘 보이기 위해 거의 모든 과목을 A학점으로 유지했다. 그리고 11학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기 전 나는 몇몇의 선생님들에게 추천서를 부탁하였고 화학, 수학, 역사, 그리고 회계 선생님 한테 추천서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목표 대학: MCPHS University 준비를 아주 철저하게 마칠수가 있었다. 그렇게 약대를 지원하고 기다리기를 3개월. 4월달쯤 합격메일을 받을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아주 어마어마한 장학금을 받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합격메일을 받고 한달 후, 합격한 약대에서 우편이 날라왔다. 바로 합격 축하글과 함께 내가 유학생 중 가장 많이 받을수 있는 장학금 65,000(Special Recognition Scholarship)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가고싶고 목표로 정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것이  믿기지 않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내가 이렇게 준비한 4년이 보람되고 평범한 한국의 김창재가 미국 고등학교에서 부학생회장인 William 이 되었다는 것이 최선을 다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아무런 정보와 준비없이 시작한 유학을 이렇게 가치있게 마무리 할 수 있게 해준 Nacel Open Door 재단 그리고 나를 묵묵히 아무 말 없이 도와준 우리 호스트 부모님(Peggy Crozier& Robert Crozier), 유학을 가도록 시작을 열어 준 한국의 부모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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